수입하려는 외교노선을 견지하였다.
그러나 660년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의해 멸망되자 외교노선을 변경하여 백제부흥전선에 참여하게 된다. 이 전쟁에서 패배한 왜국은 위기의식을 느껴 큐슈를 중심으로 한 서일본전역에 방위망을 구축하면서 667년에 왕도를 내륙의 오우미(近江)지방으로 옮긴다.
일본 황후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진상품을 바치는 신라왕을 그리고 있다. 또한 신라와 백제 사이에 ‘임나’란 지명을 도드라지게 표기하며 임나일본부설을 강조하고 있다.
삼한조공을 묘사한 삽화에서는 신라, 고려, 백제 등의 국가 이름을 누차 언급한다. 일본의 소학교 국사 교과서는 1904년부터
일본의 침략전쟁을 주도한 세력의 嫡子로서 제국 일본의 옛 판도와 영화를 되찾고 싶어 하는데서 찾을 수 있다. 60년전 제국 일본의 꿈을 무산시킨 미국은 이제 그들의 재무장에 반대하지 않는다. 그들의 발목을 잡는 힘은 군국주의 일본에 대한 공통의 역사기억을 갖는 일본 시민사회와 우리를 비롯
일본적 자신감의 표현이다. 사회주의 붕괴와 아시아의 통화위기 등을 지켜보면서 일본은 역시 강하다는 인식이 새삼스럽게 부상했다. 새 역사교과서는 이것을 역사적으로 형성된 특별한 능력이라면서 고대에서 현대까지 영광에 찬 이야기로 꾸며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새 역
역사적 정통성을 확립하려는 시도의 산물로 해석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작업이 현재로서는 신화적 허구로 받아들여질지 모르지만, 가장 최근의 왕조인 조선의 경우만 하더라도 개국당시 역사를 재해석 - 혹은 생성 -함으로써 이씨 왕조의 혈통적 우수함과 지배권력의 당위성을 확보하려는 시도가 이
일본의 지배 하에 있었다’는 점을 일선동조론의 주된 논거로 삼는다. 그는 또한 양국인의 언어구조가 동일하였다는 주장으로 자신의 논거를 보강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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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식민주의사관(식민주의역사관, 식민사관)의 정의
‘식민주의적 한국사관’을 흔히 ‘식민사관’이
지난 2001년 4월 3일 기존 7종의 중학교 역사교과서 외에 <새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새로운 역사교과서(후소샤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하면서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도 비난의 여론이 비등하게 되었으며, 한국과 중국의 정부는 재수정의 요구 자료를 공식적인 외교 경로를 통하여 일본
역사학은 과거에 일어났던 사실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학문이다. 따라서 과거의 일을 알고자하는 역사학은 학문으로서의 실용성 여부에 대한 논란과 ‘역사’라는 단어에서 연상되는 고정적인 이미지로 인하여 바르게 인식되지 못하고 있다. 지금 현재를 살아가기도 벅찬 이 상황에 굳이 과거까지 알
일본군에 의한 군대위안부 강제동원 사실을 고의로 누락하여 태평양전쟁 당시의 반인륜적 잔혹행위의 실체를 은폐하였다
태평양 전쟁시 일본군이 조선에서 군대위안부를 강제 동원한 사실에 대하여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군대위안부 강제동원은 침략전쟁을 수행하면서 저지른 반인륜적 전쟁 범죄
정도의 개괄적인 보도기사만 나왔을 뿐이며 극히 일부의 연구자와 학회에 의해 문제의 심각성이 제기되는 정도에 그쳤습니다. 일본의 역사왜곡 문제는 2001년도 2월 말경 검정통과가 확실해지면서부터 화제에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일제의 침략전쟁을 합리화하고 아시아국가들에 대한 가해행